계연수(桂延壽)의 ≪환단고기 桓檀古記≫에 수록되어 있다. 일찍이 이암은 고려시대 ≪진역유기 震域遺記≫를 저술한 이명(李茗)과 ≪북부여기 北夫餘記≫의 저자 범장(范樟) 등과 더불어 경기도 양주 천보산(天寶山)에 올라갔다가 태소암(太素庵)에서 진기한 고서(古書)를 얻었다고 하는데, 이 때 얻은 고서를 읽고 이 책을 엮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은 ≪태백진훈 太白眞訓≫ · ≪농상집요 農桑集要≫와 함께 그가 남긴 이른바 ‘행촌삼서(杏村三書)’의 하나로 꼽힌다. 서(序)에 보면 1363년(공민왕 12) 10월 3일 강화도 해운당(海雲堂)에서 저술된 것으로 되어 있다.
1세단군(서기전 2333)부터 47세단군(서기전 295)까지의 2,000여 년간의 실록을 기록하고 있으며, 북부여 해모수(解慕漱)의 건국(서기전 239) 사실로 이어지도록 되어 있다. 이러한 서술 내용의 사료적 신빙성에는 적지 않은 문제가 따르나, 단군을 1인의 고유한 인칭이 아니라 고대국가 역대 군장의 지위를 가리키는 일반 명사로 범칭한 점에서 단군조선의 역사에 대한 해석의 새로운 관점을 보여 주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