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최대의 군단인 6정과 9서당에 배속되어 장군을 보좌하였는데, 6정 가운데 대당(大幢)과 귀당(貴幢)에 각각 5인씩, 나머지 한산정(漢山停)·우수정(牛首停)·하서정(河西停)·완산정(完山停)에 각각 4인씩, 9서당의 예하부대에 각각 4인씩, 모두 합하여 62인을 두었다.
『삼국사기』직관지(職官志)에는 549년(진흥왕 10)에 두었다고 하였으나, 본디 대관대감은 대대감(隊大監)과 함께 대감에서 분화된 것으로서, 660년대 초까지는 양자를 구별하지 않고 다만 대감이라 칭한 듯하다.
대관대감직은 진골과 육두품 출신에 제한되었으나, 보임(補任) 관등에 있어서는 조금씩 차이가 있었다. 즉, 진골 출신은 아찬(阿飡)으로부터 사지(舍知)까지로, 6두품 출신은 사중아찬(四重阿飡)으로부터 나마(奈麻)까지로 임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