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 필사본. 이 일기와 함께 부록으로 최익현의 제자 최제학(崔濟學)이 쓴 「반구일기(返柩日記)」가 합본되어 있다.
1906년 6월 일본군사령부는 최익현 3년, 임병찬 2년형을 선고하고 일본헌병이 호송, 대마도의 이즈하라(嚴原)에 연금시켰다. 그곳에는 이미 호서(湖西)의 의병장이던 이칙(李侙)·남경천(南敬天) 등 9명이 유배되어 있었다.
이때 이들은 모두 머리깎기를 거절하고 저항을 하였고, 최익현은 단식을 시작하여 끝내 순국하였다. 저자는 스승 최익현의 병증세를 살피며 간호한 과정을 세밀히 기록하였고, 일본관리와의 접촉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적었다.
또, 국내의 제자·친척·친구들의 문안 내왕의 사정 등을 같은 해 음력 11월 최익현이 죽을 때까지 서술하였다. 부록인 「반구일기」는 임종 후 영구(靈柩)가 일본에서 돌아오게 된 전말과 부산항 도착 후 군중이 애도하던 상황을 기록하였다.
최익현이 임종하던 전후의 사정을 적은 뒤 영구를 고향으로 옮겨 장사지내도록 제자와 친척에게 연락하고 일본당국과 교섭을 벌이던 내용이 자세히 적혀 있다.
또한, 영구를 실은 일본 기선이 11월 부산 초량진(草梁津)에 도착하여 영구를 우리 배에 옮긴 다음 1,000여 명의 군중이 영구를 뒤따라 그 행렬이 5리나 이어졌다고 한다. 끝에는 최익현을 흠모하던 부산상무사(商務社)김영규(金永圭)의 애도문 등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