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8년 4월 5일 민족운동가 김희(金熙)가 교육구국의 취지에서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의 대동상업학교 구내에서 대신상업전수학교로 설립하고 초대 교장에 취임하였다. 수업연한 2년에 각 학년 2학급씩 100여 명의 신입생으로 출발하여, 1940년 3년제 대신상업실수학교로 개편되었다.
1943년 5월경기도 고양군 은평면 불광리에 교사를 신축하여 이전하였으며, 이듬해 4월 일제의 전시교육정책에 의하여 3년제 대신농업학교로 개편되었다. 광복 후 1948년 각 학년 2학급씩의 6년제 대신중학교로 개편되었다가, 1950년 4월 대신중학교와 대신고등학교로 개편되었다.
1953년 9월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정동에 임시교사를 설치하고 이전하였다가 1955년 7월서울특별시 종로구 행촌동 현재의 위치에 교사를 신축하여 이전하였다. 2004년 4월 기념비를 건립하고, 왕희정보교육관·왕희역사관·왕희정보도서관을 개관하였다.
2009년 현재 34학급에 총 1,114명의 학생이 재학하고 있고, 교직원은 77명이 재직하고 있다.
교훈은 ‘하면 된다’이고, 1978년 「왕희인의 헌장」을 제정하여 국적 있는 교육의 내실을 기하고 있다. 인격적 생활인 육성을 교육목적으로 해서 인격교육·건강교육·생활교육에 역점을 두고 교육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학력신장을 목적으로 멘토링 프로그램(교과 및 학습방법 관련 멘토링, 진로 및 상담 관련 멘토링)을 운영하고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체육활동에서 두각을 보였고, 특히 1960년대부터는 축구와 배구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하여 배구부는 국내경기 148연승의 신화를 남긴 동시에 한일 교환경기에서 무패의 기록을 세웠다.
축구부는 국내 군소 경기를 석권하다가 1986년 브루나이에서 열린 아시아학생선수권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 우승함으로써 아시아 학생 축구를 재패한 바 있다. 1973년부터는 충청남도 보령시 대천에 임해생활관을 개설하여 해양훈련을 통한 전인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현재 연극반·RCY·MRA·그린스카웃·해양소년단·기악반 등의 동아리가 활동하고 있고, MRA 한국본부가 주관하는 2009년도 동아리활동 평가에서 우수활동학교에 선정되었다. 1998년 개교 60주년을 맞이하여 교사(校史) 『왕희 60년사(旺熙六十年史)』를 편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