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학산의 서쪽 봉우리인 옥녀봉 남단에 전망이 아름답게 펼쳐진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1976년 12월 16일∼1977년 1월 20일에 걸쳐 발견·조사되었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2km 지점에는 강서삼묘가 있다. 408년에 만들어진 덕흥리 벽화고분은 인물 풍속이 그려진 2실묘 형식으로 주인공은 고구려의 대신 진(鎭)이다.
고분의 봉토는 방대형(方臺形)이다. 널방의 구조는 앞방의 남벽에 달린 널길과 가로로 긴 장방형의 앞방, 앞방과 널방을 잇는 좁은 통로, 네모난 널방으로 이루어진 굴식돌방이다.
널방의 네 벽은 가공한 돌을 쌓아 축조하였다. 천장가구는 널길은 평천장이고, 앞방은 2단의 평행굄궁륭식천장이며, 널방은 5단의 평행굄궁륭식천장이다. 그리고 앞방의 북벽 바닥에는 네모난 단이 있고, 널방 바닥에는 큰 판석으로 된 회칠한 널받침이 마련되어 있다.
안길은 길이 1.54m, 폭 1.02m, 높이 1.43m이며, 앞칸은 동서 길이 2.97m, 남북 폭 2.02m, 높이 2.85m이다. 안칸은 길이 3.28m, 폭 3.28m, 높이 2.9m이고, 관대(안칸)는 동서길이 2.51m, 남북 폭 2.0m, 높이 0.21m이다.
이 벽화고분에는 풍부한 내용의 벽화와 600여 자에 달하는 묵서(墨書)가 있다. 벽화는 회칠한 널방의 벽면에 흑색·적색·황색·녹색·갈색 등의 안료로 그려졌다.
널길의 벽화는 박락이 심해 분명하지 않으나, 동벽에는 입구를 향해 걷고 있는 2, 3인의 인물상과 창을 쥔 수문장이 그려져 있다. 서벽의 북쪽에는 동자를 데리고 있는 인물상이 있고, 남쪽에는 수문장이 2개의 창을 쥐고 서 있다. 그리고 동서벽의 남단에는 벽화의 설명문이 쓰여 있다.
앞방에는 주인공이 생전에 일을 보던 광경과 천상세계에 대한 내용이 그려져 있다. 북벽의 통로입구 윗벽에는 황색을 칠한 네모난 구획 안에 14행 154자를 종서로 쓴 묘지명이 있다. 이 묘지명에 의해 주인공의 이름이 진(鎭)임을 알수 있다. 그는 신도현에서 태어나 전위장군, 국소대형, 좌장군, 용양장군, 요동태수, 사지절 동이교위 유주자사 등을 지냈고, 나이 77세에 죽었는데, 영락(永樂) 18년(408) 12월 25일에 고분을 만들어 안장하였다고 하여, 이 고분의 축조연대를 알 수 있다.
통로의 동서벽에는 거가행진도(車駕行進圖)가 그려져 있다.
널방의 북벽에는 주인공의 일상생활을 묘사한 그림이, 서벽에는 마술·궁술 등 무예를 겨루는 그림이, 남벽에는 마굿간·외양간이, 동벽에는 불교행사에 관한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밖에 여러 가지 모양의 장식무늬가 배치되어 벽화와 더불어 현실을 화려하게 만들었다.
앞방 북벽 천장에 남아 있는 명문의 내용을 보면, 주인공은 하북성(華北城) 일대인 유주(幽州)에서 자사(刺史)를 지낸 뒤 고구려로 들어와서 408년 이 무덤에 안장된 것을 알 수 있다.
대안덕흥리벽화고분은 절대연대가 뚜렷하게 명문으로 남아 있어 5세기 초 고구려고분의 구조나 벽화양식을 알게 해주는 매우 중요한 고분으로 평가된다. 2004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