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일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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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에, 대전시 선화동에서 전시 속보판 형태로 창간한 일간 신문.
이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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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일보(忠南日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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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50년에, 대전시 선화동에서 전시 속보판 형태로 창간한 일간 신문.
발간 경위 및 변천

1950년 10월 3일 대전시 선화동에서 창간되었다. 초대 사장은 임지호(任之鎬)이다. 처음은 전시속보판 형태로 출발하였으나, 1951년 1월 1일을 기하여 타블로이드배판 2면으로 확대하였고, 1959년 2월 1일자로 대판 4면으로 증면하였다.

1963년 1월 남정섭(南貞燮)이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대전환의 계기를 마련하였다. 외적으로 회사의 자금을 증자하고 기업형태를 주식회사 체제로 전환하였으며, 최신식 고속윤전기를 비롯하여 시설의 현대화를 꾀하였다. 내적으로 매주 말에 8면 특집판을 발행하였으며, 신문의 편집 및 내용도 다양하게 쇄신함으로써 대신문사로서의 기반과 체제를 확고히 하였다.

1964년 7월 15일 은행동 13번지 로 사옥을 이전하였다. 1964년 10월 1일부터 주 28면을 발행하였으며, 1970년 3월 1일부터 다시 주 36면으로 대폭 증면하여 발행하였다. 1970년 5월중동 77번지로 사옥을 이전하였다. 1973년 5월 25일 경영난에 처해 있던 『중도일보(中都日報)』를 매수하여 통합한 뒤 제호를 『충남일보(忠南日報)』로 바꾸었다.

1974년 11월 1일을 기하여 전국지와 똑같이 주 48면으로 증면을 단행하였다. 1977년 5월 1일 부설 사회문제연구소를 발족하여 지역사회의 제반문제에 대한 연구·조사, 분석·정리 및 개발을 도모하였다. 또한, 1978년 3월 1일 부설 통일문제연구소를 발족하여 조국통일에 관한 연구와 관계 자료를 정리, 간행하였다.

1978년 1월 1일을 기하여 제호를 다시 『대전일보』로 환원하고 대전판·충남지방판·충북판을 발행함으로써 지역사회의 여론을 선도하고, 그 발전의 구심적 구실을 하는 충청도민의 진정한 대변지로서의 소임을 다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1981년 1월 1일부터는 매일 12면으로 증면하여 발행하였다. 1982년 11월 중구 문화동으로 사옥을 이전하였다. 1987년 9월 1일 매주 80면으로 증면하였고, 1988년 4월 1일부터는 매일 16면을 발행하였다. 1989년 3월 1일에는 최신 고속컬러오프셋 윤전기를 도입하여 동시에 32면 발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후에도 수차례 증면을 단행하여 1998년 당시 주 116면을 발행하였으며, 신문제작 전산화·뉴스속보판 가동 등의 기술혁신을 꾀하였다.

2003년 8월 27일 현 사옥으로의 입주를 계기로 제2창간을 선포하고, 2004년 1월 26일부터는 자매지 『대전플러스』를 창간하였다. 주요 주관행사로는 대일보훈대상(大日報勳大賞)·유관순마라톤대회·안면도마라톤대회·충무기 전국마스터즈수영대회 등이 있다.

참고문헌

『2009한국신문방송연감』(한국언론재단, 2009)
『1998한국신문방송연감』(한국언론연구원, 1998)
『한국신문백년지』(윤임술 편, 한국언론연구원,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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