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시대 왕명을 문서로 작성하고 왕의 자문에 응하던 한림대(翰林臺)의 관원이다. 대조는 원래 중국 한(漢)나라 때 처음 설치되었으나 당시는 정식 관직명이 아니었다.
그 후 당나라 현종(712∼756) 초에 이르러 한림원(翰林院)에 대조를 두어 천자의 조칙에 관한 업무를 관장케함으로써 비로소 관직명이 되었다. 대조에는 경학(經學)과 문장에 뛰어난 선비가 주로 임명되었다.
신라의 대조는 당나라 제도를 모방하여 설치하였는데, 『삼국사기』직관지 등에 수록되어 있지 않아, 이 관직의 정확한 설치시기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신라 경덕왕대에 종래의 통문박사(通文博士)를 바꾸어 한림이라 하였고, 혜공왕 7년(771) 12월에 완성된 성덕대왕신종(聖德大王神鐘)의 명문(銘文) 가운데 사(詞)를 쓴 대나마 요단(姚湍)의 당시 관직이 한림대조(翰林待詔)라 하였으므로 대조의 관직은 경덕왕대에 한림의 설치와 동시에 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신라에서의 한림대조는 한림랑(翰林郞)의 아래이고 한림서생(翰林書生)의 상위 관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