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이군경회 ()

국방
단체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이 상부상조하여 자활능력을 배양하고 국가발전 및 국제평화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
정의
국가유공자와 그 유족이 상부상조하여 자활능력을 배양하고 국가발전 및 국제평화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
연원 및 변천

1951년 5월 15일 임시수도 부산에서 사단법인으로 창설된 대한상이군인회가 모체이다. 1953년 6월 29일 본부 사무실을 부산에서 서울 중구 남대문로로 이전하였으며, 같은 해 10월 1일 이승만 대통령을 총재로 하여 대한상이용사회로 이름을 바꾸었다. 5·16군사정변 직후인 1961년 5월 22일 국가재건최회의가 포고령 6호로 모든 정당·사회단체 해산을 명령함에 따라 해체되었다가 1963년 8월 7일 공포된 「군사원호 대상자 단체 설립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8월 17일 대한상이군경회가 설립되었다. 1973년 4월 16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현재의 중앙보훈회관을 신축하여 이전하였다. 1989년 1월 1일 「국가유공자 등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대한민국상이군경회로 명칭을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기능과 역할

회원이 상부상조하여 자활능력을 배양하고 조국통일 성업달성과 세계평화에 기여한다는 목적 하에 회원의 상부상조와 친선을 위한 사업, 국가발전과 보훈시책에 대한 협조, 신체적·정신적 재활을 위한 체육진흥사업과 이를 위한 국제교류, 전쟁억제와 세계평화를 위한 국내외 유관기구와의 유대강화, 회원의 자활정착을 위한 사업 등을 벌이고 있다. 과거 주요 활동사항을 살펴보면, 6·25전쟁 기간 중에는 정전협정 체결 반대시위를 주도했으며, 그 후 재일동포북송저지투쟁에서도 반공애국단체로서의 역량을 발휘하였다. 1956년 5월 세계제대군인연맹(WVF) 회원국으로 가입한 이후에는 이사회에 참석하는 한편, 세계제대군인·저항운동자·전쟁희생자 연차대회에 매년 대표를 파견하는 등 국제적 활동과 민간외교에 기여하였다. 또한 1967년 4월 25일 서울 오류동 국립원호병원에서 제1회 척수장애자 체육대회를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매년 체육대회를 개최하여 척추 부상 장애용사들의 자립의지와 재활정신을 고취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 외에도 전국의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군부대를 순회하며 안보강연을 정기적으로 수행하고 있다.

현황

조직은 중앙회에 회장, 부회장, 사무총장을 비롯하여 비서실·감사실·기획실·총무국·복지지원국·지도국·복지사업국 등 7개의 실·국과 상군체육회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국 16개 시·도에 지부가 있고 각 시·군·구에 230개의 일반지회와 20개의 특별지회가 있다. 회원 수는 10만 여명이며, 이 중 6·25전쟁 관련 회원이 24,520여 명, 베트남전쟁 관련 회원이 25,370명, 국내 공상 관련 회원이 44,000여 명이다.

참고문헌

『대한민국상이군경회50년사』(대한민국상이군경회, 2004)
『한국전쟁피해통계집』(국방군사연구소, 1996)
집필자
박동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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