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는 고구려의 덕물현(德勿縣, 일명 仁物)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덕수로 명칭이 바뀌었다. 고려 현종 때개성현에 예속시켜서 상서도성의 관할로 만들었다.
1056년(문종 10) 흥왕사(興王寺)를 덕수현 내의 덕물산(德物山) 남쪽에 지으면서 현의 치소(治所)를 양주(楊州)로 옮겼다가 뒤에 개성부 관할에 들게 하였다. 1389년(공양왕 1) 다시 감무를 두었으나 조선 태조 때 감무를 없애고 해풍군(海豊郡: 지금의 豊德郡)에 편입시켰다.
조선시대에 이 지역은 개성 남쪽 30리 지점에 있어 송악산(松岳山)에서 뻗은 산줄기가 동서로 감싸고 있었다. 지금의 중면 덕수리 지역으로서 한강과 임진강 하구에 있어 고려시대에는 개성의 외곽을 방어할 뿐만 아니라 각종 물자를 양륙하는 항구의 구실을 하였다.
해안에는 망포(芒浦)ㆍ송정포(頌井浦) 등이 있었고, 개성과 통진ㆍ김포를 이어주는 도로가 발달하였다. 봄과 가을에 나라에서 제사를 지내는 덕적사(德積祠)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