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지유(指諭)보다 한 단계 낮은 직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전에 대비한 군 편제로서의 오군(五軍)과 무신집권기 이후의 각종 금군(禁軍) 부대에서 그 존재가 확인된다.
오군의 경우는 중군(中軍)에만 있었는데, 중군을 통솔하는 병진도지유(兵陣都指諭)와 나란히 기술된 점으로 보아 이의 참모 내지 부관이었던 듯하다.
한편 1278년(충렬왕 4) 왕이 원(元)에서 돌아올 때 견룡(牽龍)·순검(巡檢)·백갑(白甲) 등 금군 부대의 지유와 도장교가 예복 차림으로 행렬을 맞이한 사실로 보아 금군 소속의 도장교는 지유와 마찬가지로 국왕의 호위를 비롯하여 여러 비주부(妃主府) 및 왕자부의 숙위, 각종 의례에서의 의장(儀仗) 등을 주로 담당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