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1책. 목판본. 그의 유고는 방대한 분량이었으나, 실화(失火)로 인해 전부 소실된 것을 그의 제자 이명시(李命蓍)와 종제인 목(穆)이 유문을 모아 1679년(숙종 5) 간행하였다. 권두에 허목의 서문과 권말에 권수(權脩)의 발문이 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있다.
권1은 답문(答問) 19편, 답문부(答問附) 9편, 권2는 소 3편, 서(書) 20편, 제문 4편, 시 25수, 권3은 부록으로 행장·묘지명·언행부록(言行附錄)·발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답문과 답문부는 예설(禮說)에 관한 내용이 거의 대부분이다. 「답윤선(答尹瑄)」에서는 대상(大祥)의 제례(祭禮)에 대해 논하였고, 「답이제운(答李齊運)」에서는 벼슬하는 사람이 사상(私喪)과 군상(君喪)을 겹쳐 당했을 때의 상례(喪禮)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였다.
「답혹인(答或人)」은 축문에 있어서 ‘상향(尙饗)’이라는 문구를 사용할 경우와 축판(祝板)의 규격 등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개장의(改葬儀)」도 어떤 사람의 질문에 대한 답서인데, 개장에 따르는 택지(擇地)·치관(治棺)·복제(服制)·축문 등 여러 가지 의식절차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답문부도 예론에 관한 것이 거의 전부이다. 그 가운데 「거관지절(居官之節)」은 1659년(현종 즉위년) 자의대비(慈懿大妃) 복상문제(服喪問題)로 예송(禮訟)이 일어나 척주(陟州: 지금의 강원도 삼척)로 척출되는 허목에게 준 글로, 당시 예론에 관한 남인(南人)의 입장을 연구하는 데 참고 자료가 된다.
권2의 소는 지평(持平)의 사직을 세 번에 걸쳐 올린 것이다. 서(書)와 제문에는 별로 주목할 만한 것이 없다. 시는 몇 수 되지 않으나 거의가 칠언절구로 되어 있으며 전아(典雅)한 느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