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학생예술좌 ()

연극
단체
1934년 동경에 설립되었던 학생극단.
정의
1934년 동경에 설립되었던 학생극단.
개설

동경학생예술좌(東京學生藝術座)는 1934년 6월 24일에 동경 유학생들이 신극운동을 위하여 동경에서 창단한 학생 연극 단체로서, ‘건전한 연극발전과 민족의식 고취’를 목표로 하였다. 단원은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니혼대학[日本大學]·호세대학[法政大學] 등에서 문학·연극·영화 등 예술을 전공하는 대학생 박동근(朴東根)·주영섭(朱永涉)·마완영(馬完英)·이진순(李眞淳)·이해랑(李海浪)·허남실(許南實)·김동원(金東園)·한적선(韓笛仙)·임호권(林虎權)·김영화(金永華)·김용하(金龍河)·유종렬(柳宗烈)·황순원(黃順元)·주경은(朱敬恩)·김영수(金永壽) 등 15인이었다.

연원 및 변천

이 극단은 라디오방송극에서 공연을 시작하였다. 제1회는 1934년 9월존 골스워디(John Galsworthy) 작「태양」, 제2회는 주영섭 작「날이 밝으면 비가 오십니까」, 제3회는 박동근 작「생활도」, 마지막인 제4회 방송은 주영섭 작「평행선」이었다.

이 극단은 1935년 6월 창립 1년 만에 ‘조선의 신극수립을 창작극에서’라는 표어 아래 유치진(柳致眞) 작「소」와 주영섭 작「나루」를 스키지[築地]소극장(小劇場)에서 공연하였다.

1937년 6월에는 유치진 작품인「춘향전(春香傳)」으로 제 2회 공연을 하였다. 작품「춘향전」은 유치진이 특유의 극작술로 고전극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였고, 리얼리즘에 입각한 로멘티시즘 극으로 재창조시킨 것이었다.

1938년 6월, 이 극단은 극단 창립 5주년 기념으로, 유진 오닐(Eugene O'Neill) 작「지평선너머」와 주영섭 작「벌판」을 스키지소극장에서 제 3회 공연을 올렸다. 당시 번역극을 공연한 것은 유진 오닐이 1936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이미 문학적 측면에서 검증된 작품이란 점과 학생들에게 서양연극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여겼기 때문이다.

1939년 6월 제4회 공연으로 이서향(李曙鄕) 작「문」과 함세덕(咸世德) 작「유명(幽明)」을 계획하였으나, 이 작품들은 일본의 ‘조선어연극 금지령’으로 끝내 무대에 공연되지 못했다. 이후 동경학생예술좌의 연극활동은 점차 미미(微微)해졌다.

한편, 이들은 대학극사상 최초로 기관지『막(幕)』을 창간하였다. 그러나 주로 단원들의 연극에 관한 글을 실었던 이 잡지는 3호로 끝났다. 1939년 8월에 귀국한 박동근·주영섭·마완영·이서향 등이 연극을 통하여 좌익사상을 고취하였다는 죄목으로 일본 경찰에 구속되었다. 이후 1940년 극단 대표 박동근이 약 6개월간 복역 생활에서 풀려난 후, 그해 9월 동경으로 건너가 사실상 동경학생예술좌는 해체되었다.

의의와 평가

극단 동경학생예술좌는 민족항일기에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신극운동을 전개하기 위해서 조직된 단체로서, 연극단체 중에 가장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조직적이고 지속적으로 활동하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된다. 대학극, 더 나아가 아마추어극단체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참고문헌

『미수(米壽)의 커튼콜』(김동원, 태학사, 2003)
『한국연극반세기』(강계식, 현대교육출판부, 1986)
『한국연극-증언으로 찾는 연극사 1』(김미도, 1992. 6)
『한국연극․무용․영화사』(대한민국예술원, 1985)
『한국신극사연구』(이두현, 서울대학교 출판부, 1966)
『막(幕) 1∼3집』(동경학생예술좌, 1936·1938·1939)
「극단 신협사 연구」(정주영, 동국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4)
관련 미디어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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