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 2책. 운각활자본(芸閣活字本).
1636년(인조 14) 8월 11일 서울을 출발해 부산과 대마도를 거쳐 그 해 12월 7일 일본 에도(江戶)에 도착, 그 곳에서 20여일간 관백(關白)을 접견하고 이듬 해 2월 25일 부산에 귀환, 3월 9일에 인조를 접견하기까지 모두 6개월에 걸친 일기이다.
그 주요 내용은 회례(回禮)·피로인쇄환(被虜人刷還), 그리고 유황무역(硫黃貿易)의 세 가지와 국서의 일본천황 연호, 왕·대군 등 관직 칭호를 개서(改書) 또는 삭제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또한 일본에 체류하면서 대마도에서부터 대동한 두 중에게 준 시 100여수와 에도에서 일본인 학자 다이라(平成春)와 성리학에 대한 토론을 전개한 사실이 수록되어 있다. 그는 다이라가 왕양명(王陽明)·육구연(陸九淵)의 학문에 심취되어 경사(經史)에는 뛰어난 자질을 보이고 있으나 이학(理學) 공부에는 소홀하다고 평하고 있다.
또 피로인의 쇄환이 뜻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국서의 천황 연호 문제도 원만히 해결되지 못한 채 금·는·의류 등 회례물의 증여와 왕·대군 등의 삭제 정도의 성과밖에 이룰 수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더욱이 유황의 무역은 일본측에서 군기(軍器)에 관한 것이라 하여 크게 금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예 실현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책은 원래 『동명집(東溟集)』에 수록되어 있던 것으로, 맨 앞에 허목(許穆)의 서문이 붙어 있다. 권말에 「문견잡록(聞見雜錄)」이라는 제목으로 다이라(平調與)시말과 일본 관백의 사적을 비롯해 일본의 산천·지리·풍속·관제·복식 등 자신이 직접 보고 들은 바를 수록하였다. 그리고 당시 사행 일원의 명단과 마지막 2면에는 일본 지도가 판각되어 있다.
이 책은 조선 후기 정묘호란·병자호란 등 급격하게 변화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일본과 화호(和好)의 필요성을 느낀 시기에 이루어진 한·일 관계의 기록이므로 당시의 한·일 관계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해행총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