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영토가 된 뒤 757년(경덕왕 16) 기성군(岐城郡)으로 고쳐 삭주도독부(朔州都督府)에 속하게 하였고, 1018년(현종 9) 현으로 강등시켜 금성현(金城縣) 기성면(岐城面)이 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08년 김화군(金化郡)에 병합되었다. 1945년 38도선 이북의 공산치하에 있다가 1950년 수복되고 뒤에 철원군에 편입되었으며, 지금의 임남면 지역으로 추정된다.
동사홀의 뜻은 ‘동사’가 강가를 의미하고 ‘홀’이 고을ㆍ성을 뜻하므로 ‘강가의 큰 고을’이 된다. 북한강 상류의 계곡을 중심으로 발달한 옛 부족국에서 지명이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에 기성창(岐城倉)이 있었고, 회양(淮陽)과 금성(金城)을 연결하는 도로가 발달하였다. 여름철에는 춘천의 소양창(昭陽倉)까지 뱃길이 열려 물자수송이 가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