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6년 의열단원으로 중국에서 항일 투쟁을 전개하던 나석주는 유림계의 대표이며 민족 지도자인 김창숙(金昌淑)의 권유를 받고, 조국의 옥토를 강탈하고 농민을 착취하는 대표적 일제 침략 기관인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조선은행·조선식산은행을 습격, 파괴하기로 결심하고 국내로 잠입하였다.
그 해 12월 28일 나석주는 인천을 경유하여 서울로 들어왔다. 그는 먼저 남대문통에 있는 식산은행에 폭탄 1개를 투척하였으나 불발되자, 그길로 즉시 동양척식주식회사를 습격하였다. 먼저 수위실을 기습하여 일본인 다카기(高木吉江)를 사살하고 이층으로 뛰어올라 가던 중 뒤따라 올라오던 동양척식주식회사 사원 다케(武智光)를 쏘아 쓰러뜨렸다.
그리고 토지 개량부로 들어가 기술과 차장 오모리(大森四太郎)와 과장 아야다(綾田豊)를 쏘아 쓰러뜨리고 폭탄 1개를 투척하였다. 문밖으로 나온 뒤, 그는 또 조선철도주식회사 수위실을 공격하여 마쓰모토(松本策一) 외 1명을 권총으로 쓰러뜨린 뒤, 을지로 2가 방면으로 달렸다. 이때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경기도 경찰부 경부 다하타(田畑唯次)를 쏘아 사살하였다.
그리고 나석주는 전찻길을 따라 계속 달렸으나, 그때는 이미 수십 명의 일본 경찰의 추격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추격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자신의 가슴에 권총 3발을 쏴 장렬하게 순국하였다.
비록 동양척식주식회사를 폭파하는 데는 실패하였으나, 한국 경제 침략의 앞잡이로서 우리 민족의 증오의 대상이었던 동양척식주식회사를 백주에 공격하여 일본인을 혼비백산하게 하였을 뿐 아니라 온 민족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어 준 쾌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