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말기의 유신(遺臣)들이 새 조정인 조선에 반대하여 벼슬살이를 거부하고 은거하여 살던 곳으로 유명하다.
고려의 유신인 신규(申珪)ㆍ조의생(曺義生)ㆍ임선미(林先味)ㆍ이경(李瓊)ㆍ맹호성(孟好誠)ㆍ고천상(高天祥)ㆍ서중보(徐仲輔) 등 72인이 끝까지 고려에 충성을 다하고 지조를 지키기 위해 이른바 부조현(不朝峴)이라는 고개에서 조복을 벗어던지고 이곳에 들어와 새 왕조에 출사하지 않았다. 이 때 조선왕조는 두문동을 포위하고 고려 충신 72인을 불살라 죽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또 일설에는 동두문동과 서두문동이 있어서 동두문동에는 고려의 무신 48인이 은거하였는데 이들도 모두 산을 불태울 때 죽었다고 한다. 정조 때 조정에서 그 자리에 표절사(表節祠)를 세워 그들의 충절을 기렸다.
두문동에 관한 기록은 조선 순조 때 당시 72인의 한 사람인 성사제(成思齊)의 후손이 그의 조상에 관한 일을 기록한 『두문동실기(杜門洞實記)』가 남아서 전해지고 있다. ‘두문불출(杜門不出)’이라는 말이 여기서 비롯되었다고 하며 그 당시 많은 선비들이 은거함에 따라 이를 두문동이라고 부르는 곳이 여러 곳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