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파사왕 때 이 지역이 서쪽으로는 백제와 접하고 남쪽으로는 가야에 인접하므로 가소(加召)와 마두의 두 성을 쌓게 하였다. 94년(파사왕 15) 2월 가야의 군사가 마두성을 공격하자 왕이 아찬(阿飡) 길원(吉元)에게 기병 1,000명을 끌고 나아가 쳐서 쫓아버리게 하였다.
『대동지지』에는 신라 때의 미상지분(未詳地分)으로 기록하여 정확한 위치를 고증하기는 어렵다. 다만 몇몇 문헌의 기록으로 보아 현재의 거창군 남하면 지역에 마두성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가소성이 서쪽으로 백제에 접하고 있었다고 했는데, 가소성은 경덕왕 때 가조현(加祚縣)으로 바뀌었고 오늘날에도 가조면으로 존속한다. 가소성은 『대동여지도』에 옛 산성으로 표시되어 있다.
마두성이 남쪽으로 가야와 접하고 있었다면 합천군과 경계되는 지역이어야 할 것이다. 지형상으로 남강(南江)의 두 지류가 만나는 계곡이 군사상의 요지가 될 것이므로, 『대동여지도』에 나타난 박유산(朴儒山)ㆍ감악산(紺岳山)이 아니면 조선시대에 봉수(烽燧)가 있었던 소현산(所峴山) 일대에 마두성을 쌓았을 것으로 본다. 당시에 합천과 거창을 연결하는 유일한 도로가 이곳을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