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국사기 ()

근대사
문헌
조선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현채가 각 국의 역사를 기사본말체 형식으로 기술한 역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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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학자 현채가 각 국의 역사를 기사본말체 형식으로 기술한 역사서.
개설

이 책은 총 14책 32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편찬/발간 경위

현채는 일본인 강본감보(剛本監輔)가 지은 『만국사기(萬國史記)』와 중야안역(重野安繹)의 『일본유신사(日本維新史)』, 영국인 매켄지(Mackenzie, R.)의 『태서신사(泰西新史, A History of the Nineteenth)』 등 외국의 여러 역사서를 윤색·번역하여 이 책을 완성했다.

현채가 주로 저술활동에 전념하던 광무·융희 연간의 우리나라는 안으로 근대화를 위한 제반 개혁이 요구되고 있었으며 밖으로는 제국주의 열강, 특히 노골화되어 가던 일본의 침략에 대응하여 국권 수호를 위한 애국심과 애족심이 앙양되던 시기였다.

따라서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국사교육이 강조되면서 여러 종류의 역사서들이 간행되고 있었다. 한편 이 시기는 신구학 논쟁기로서 서구의 사상과 지식이 수용되면서 일부의 지식인들 사이에 신지식이 급속히 확산되어 가던 시기이기도 했다.

서구의 사상이나 지식에 대해 일군의 유생들은 수구적 입장을, 또 다른 일군의 지식인들은 적극적 수용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후자를 중심으로 한 신지식인들은 세계사에 대한 지식이 필수적임을 강조하게 되면서 세계의 역사를 다룬 서적의 간행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이런 목적을 위해 현채는 중국과 일본의 세계사서가 번거롭고 착오가 많아 독자들이 못마땅하게 여기는 점을 개탄하여 국한문 혼용의 모범적인 세계사를 의도하고 간행한 책이 바로 『만국사기』이다.

내용

서술방식을 보면, 각 국의 역사를 모국(某國), 모년(某年), 모사건(某事件)에 대해 각 조로 세분하여 기사본말체(紀事本末體)의 형식으로 기술되어 있다. 각 나라 역사 기술의 형식이 동일하지는 않지만 각 국의 정치·경제·사회·종교·관습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해 서술대상으로 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정치사 위주의 역사 서술을 넘어서고 있다.

본문에서 각 기(各記) 대부분의 내용은 원서(原書)에 토대하였으나 현채는 각 국의 개별적인 역사적 사건 아래 자주(自註)를 넣어, 해당시기 한국과 중국의 연호를 표기해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또한 각 기의 마지막 부분에 전통적인 사서의 예처럼 총평, 즉 사론(史論)을 시도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원문의 일부를 편의에 따라 개역(改譯)하고 있다.

각 권의 서술대상국을 권수별로 구분해 보면, 제1권에서 제4권은 아시아사, 제5권은 아프리카사, 제6권에서 제26권은 유럽사, 제27권에서 제28권은 아메리카사, 제29권은 오세아니아사, 속편 1권에서 2권은 청국무술정변기(淸國戊戌政變記)와 청국단비기사(淸國團匪記事)에 각각 할애되고 있다.

말하자면 이 책에는 지역적으로 아시아·유럽·아프리카·남북아메리카·오세아니아 등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각 대륙별 소속 국가들을 총망라하여 각 나라의 역사가 분야별로 기술되어 있다.

광무(光武)·융희(隆熙) 연간에 간행된 대부분의 사서들은 오직 중화의 예속에서 탈피하려는 전통적 과제에 집착한 나머지, 구미나 일본의 침략을 받는 현실과 그 본질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의의와 평가

이 책에서 현채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구습에 얽매여 식견이 고루하고 자각 없음을 한탄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망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도로서 자립을 주장하며 자립을 위한 방편이 교육 이외에는 없다고 하여 자국사와 더불어 세계사에 대한 이해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의 사서들에 나타나는 세계관처럼 이 책에서는 충의·충효를 강조하며 위인·열사의 행위를 역사발전의 주요 동인으로 설정하고 있다. 또한 현채는 이 책에서 일제의 식민사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일본 신공황후(神功皇后)의 신라정벌설이나 임나일본부설의 인정, 외래의 침략세력을 입술과 이〔脣齒〕의 형세로 인식한 점들은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여러 가지 한계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당시 사회의 지적 수준의 반영이며 역사적 산물이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은식·장지연 등이 후에 이 책의 저자 현채를 신랄하게 비판했지만, 당대 대부분의 지식인들에게 이 책은 세계사의 정황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교과서 역할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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