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5.5m. 현재 4층 지붕돌까지 남아 있으며, 받침 부분의 구조는 명확하지 않지만 2층 받침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층 받침의 덮개돌로 추정되는 석재가 길 위에 드러나 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땅에 묻힌 부분은 별석(別石)의 바닥돌과 받침 면석(面石)이며, 각 면석의 가운데에는 가운데 기둥 하나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드러난 받침돌은 4변의 길이가 같은 네모난 돌인데, 각 면에는 넓은 모서리 기둥을 새겼고, 1장의 널돌을 덮개돌을 삼았으며, 덮개돌 아랫면에 두른 쇠시리인 부연(副椽)과 몸돌 굄은 표현되지 않았다.
1층 몸돌은 네모난 기둥 모양으로 비교적 높이가 높은 편인데, 각 면의 좌우에는 모서리 기둥이 얕게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신라 석탑의 전형적인 모습과는 뚜렷이 구별되는데, 처마와 처마가 맞닿는 전각(轉角)에 이르면서 완만한 경사를 이루어, 마치 목조 건물의 지붕 곡선과 비슷한 모습을 띠고 있다. 지붕돌의 윗면에는 1단, 아랫면에는 2단의 받침이 있다. 2층 이상의 몸돌은 모두 너비에 비하여 높이가 안정감을 주며, 지붕돌 역시 1층 지붕돌과 같이 낮고 넓으며 체감률도 매우 적은 편이다.
특히 이 석탑에는 2층∼4층 몸돌과 지붕돌 사이에 별석의 몸돌 받침이 들어가 있다. 몸돌 받침은 네모난 널돌로 아랫면은 약간의 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윗면에는 1단의 몸돌 굄이 새겨져 있다. 이러한 모습은 서울 홍제동 오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강릉 신복사지 삼층석탑(보물, 1963년 지정) 등 고려시대에 건립된 석탑을 비롯하여, 조선 초기에 세워진 양양 낙산사 칠층석탑(보물, 1968년 지정) 등으로 계승되었다. 몸돌 받침은 목탑에서 몸돌 주변에 난간을 두른 것과 같이 난간 부분이 퇴화된 것으로 보이는데, 주로 중부 지방을 중심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