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4년 전라남도 강진(康津) 다산초당(茶山草堂)에서 저술했다. 1936년 간행된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제2집 제5·6권에 수록되어 있다. 신연활자로 간행된『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 제2집 제5·6권 및 2012년 확정된 『정본여유당전서』 제7책에 수록되어 있다.
서설에서 맹자는 자사(子思)의 문인이 아니라 자사의 문인에게서 배웠다는 『사기(史記)』의 설을 취하고 있다. 전체적인 내용은 양혜왕장(梁惠王章)으로부터 진심장(盡心章)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내용을 선별해 후한시대 조기(趙岐)의 고주(古註)와 송나라 주희(朱熹)의 신주(新註)를 함께 인용하면서 자신의 설을 내세우고 있다. 대체로 고주와 금주 가운데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으려는 다산학의 기본 태도가 엿보인다.
중요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조기나 주희가 주장하는 만승천자설(萬乘天子說)을 부인하고, 만승이란 진(晉)·제(齊)와 같은 제후임을 논증하고 있다. 둘째, 성기호설(性嗜好說)의 이론적 근거를 맹자의 동심인성(動心忍性)과 이목구체(耳目口體)의 기호를 성이라 한 데서 찾아내고 있다.
셋째, 고자장(告子章)에서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인물사품설(人物四品說) 등을 말하면서 인간은 영지(靈知)를 받았기 때문에 금수와 구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넷째, 사단론(四端論)에서 주희의 인의예지선천설(仁義禮智先天說)에 대해 후천적 실천 윤리의 결과론을 내세우고 있다. 다섯째, 인(仁)의 구체적 내용은 오륜(五倫)이지만, 오륜 외에 다시 목민(牧民)의 윤리가 있음을 지적하고, 목민으로서의 자덕(慈德)을 강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