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백제의 혜군(槥郡)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 혜성군(槥城郡)으로 고쳐 1018년(현종 9) 운주(運州: 지금의 홍성)의 속현으로 하였으며 후에 감무를 설치하였다.
1293년(충렬왕 19) 현인(縣人) 복규(卜奎)가 합단(哈丹: 원나라의 叛賊)의 침입을 막을 때에 공로가 있다 하여 지면주사(知沔州事)를 두었다. 1413년(태종 13) 면천으로 고치고 군(郡)으로 승격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당진군(지금의 당진시)에 편입되면서 면천면이 되었다.
면천의 지명 유래는 이 지역의 서북쪽에 있는 고산(高山)에서 많은 내〔川〕가 흘러내리고 있어 ‘내가 흘러 가득하다’라는 뜻에서 나온 듯하다.
선조 때 지변(地變)으로 5개 면의 육지가 바다로 변하여 주민들이 실의에 빠지자, 주민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매 윤년(潤年)마다 기지시(機池市) 마을에서 줄다리기를 실시하였다. 수상(水上)ㆍ수하(水下)의 두 팀으로 나누어 실시하는 이 행사는 오늘날 1982년 중요무형문화재(현, 국가무형유산)로 지정되었다.
아산만에 면하고 있어 조선시대에는 군사ㆍ교통상의 요지였다. 진산(鎭山)이었던 몽산(蒙山)에는 옛 성이 있으며 해안에는 창택산(倉宅山) 봉수가 있었다. 예당평야의 중심지에 있어 당진ㆍ신창ㆍ덕산ㆍ예산 등을 연결하는 교통망이 발달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