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성황후 탄강구리비 ( )

목차
관련 정보
여주 명성황후 탄강구리비 비각
여주 명성황후 탄강구리비 비각
근대사
유적
국가유산
경기도 여주시에 있는 대한제국기 명성황후 민씨의 출생지에 건립한 기적비.
시도문화유산
지정 명칭
명성황후탄강구리비(明成皇后誕降舊里碑)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지정기관
경기도
종목
경기도 시도유형문화유산(1973년 07월 10일 지정)
소재지
경기도 여주시 명성로 71 (능현동, 명성황후기념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경기도 여주시에 있는 대한제국기 명성황후 민씨의 출생지에 건립한 기적비.
내용

1973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경기도 여주시 능현동에 있다. 화강암으로 된 비의 전체 높이는 268㎝, 방형기단석(方形基壇石) 위에 세워진 비신(碑身)의 높이는 150㎝, 너비 64㎝, 두께 46㎝이다.

비 앞면에는 “명성황후가 태어나신 옛 마을(明成皇后誕降舊里)”, 뒷면에는 “광무 8년 갑진 오월 어느날 엎드려 눈물을 머금고 공경히 쓰다(光武八年甲辰五月日拜手飮涕敬書)”라는 의미의 글이 새겨져 있어, 이 비가 1904년(광무 8)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현재 일부만 남아 있으며, 비각은 1970년에 새로 보수하였다.

필자 미상이나 명성황후의 둘째 아들이며, 당시 황태자였던 순종의 글씨로 추측된다. 명성황후는 1851년(철종 2)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나 1866년 고종 왕비로 책봉되었다. 그가 왕비로 있은 시기는 조선사회의 대변혁기였으며, 명성황후는 이 시기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날로 그 세력이 강대해지는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 1895년 삼국간섭(三國干涉)의 틈을 타 친러반일정책(親露反日政策)을 쓰다가, 일본자객에게 경복궁에서 시해되었다. 1897년 명성황후로 추봉되었다.

참고문헌

『경기도문화재대관』(경기도, 1998)
『경기도문화재대관』-경기도지정편-(경기도, 1990)
관련 미디어 (3)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