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란에 대한 것은 『삼국유사』의 선덕여왕조에, 당시 당(唐)나라 태종(太宗)이 홍색·자색·백색꽃의 모란 그림과 씨앗 서 되를 보내 왔다고 적고 있다.
문양으로서는 통일신라시대의 암막새 기와에 모란꽃을 도안화한 보상화(寶相華) 무늬가 많이 나타나며, 고려 이후에는 여러 공예 의장(工藝意匠)에 더욱 성행하였다.
고려자기를 살펴보면, 초기에는 송(宋)·원(元) 도자기의 모란 무늬와 같은 회화적인 형식이었으나, 차츰 절지(折枝)와 화분(花盆) 형식 등의 관념적인 무늬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당초 덩굴과 결합된 모란 당초 무늬를 철사(鐵砂) 물감으로 활달하고 자유롭게 그린 회화적인 무늬도 보이고 있다.
조선시대의 분청사기(粉靑沙器)에도 시원스러운 철사 모란 무늬뿐만 아니라 박지(剝地)·선각(線刻, 彫花) 기법 등에 의한 추상화된 모란 무늬가 특징적이며, 백자(白磁)에서는 매우 사실적인 투각(透刻) 모란 무늬가 항아리 등에 가득 새겨지고 있다.
모란은 일찍이 그 고운 아름다움으로 시와 고사(故事)에 늘 등장하여, 국색 천향(國色天香)의 자색으로서 꽃 중의 꽃인데다 화목을 상징하기까지 하여 화재(畫材)에 뿐만 아니라 복식(服飾)·가구(家具) 등의 중요 장식 무늬로 널리 쓰여져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