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간(十干) 십이지에서 특히 설날부터 12일 동안을 십이지의 일진으로 따져서 털 있는 날[有毛日]과 털 없는 날[無毛日]로 가리고 길흉을 판단하는 관습이 있다. 12 동물 중에서 털 있는 10종의 동물인 쥐·소·호랑이·토끼·말·염소·원숭이·닭·개·돼지의 날들은 유모일이고, 털 없는 2종의 동물인 용·뱀의 날은 무모일이 된다.
이 날들의 길흉의 판단은 대체로 그 짐승들의 성격에서 오는 이로운 점, 해로운 점들로 기준을 삼으나, 지방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이렇게 십이지로 날을 가리는 관습의 역사는 퍽 오랜 듯하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488년(소지왕 10)의 사금갑사건(射琴匣事件)이 있은 뒤부터 나라의 풍속이 매년 정월 첫 돼지·쥐·말 날에는 모든 일을 삼가고 동작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러한 설화는 흔히 먼저부터 있어오던 관습에 대한 설명설화로서 후세에 생기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그 관습은 그 이전부터 있어왔던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비슷한 기록은 조선 초기의 ≪동국여지승람≫에도 보인다. 그리고 근세의 ≪동국세시기≫에 이르면 오늘날과 같은 관습의 기록을 많이 볼 수 있는데, 특히 다음 기록은 그 대표적인 한 예이다.
즉 “설날부터 상점들이 문을 닫고 쉬다가 날짜를 잡아서 문을 여는데, 반드시 모충일(毛蟲日)에 연다. 이는 그 모충들의 번성하는 솜털의 뜻을 취하여 상업의 번창을 바라는 것으로 인일(寅日)에 문을 여는 경우가 가장 많다.” 지금도 정초에 쉬었다가 소날 또는 토끼날, 특히 호랑이날이 좋다고 해서 이날 개점이나 개업을 하는 일이 있으니 위의 ≪동국세시기≫의 관습과 같다고 하겠다.
이러한 관습의 오늘날의 상황을 살펴보면, 먼저 설날이 유모일이면 그해는 오곡이 잘되고 풍년이며, 무모일이면 반대로 흉년이 들 것으로 판단한다. 또한, 정초 10일 이내에 유모일이 많이 들면 풍년이고 무모일이 많으면 흉년이 들 것으로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 경상남도지방에서는 정초에 유모일이 많으면 목화농사가 잘되고, 네발짐승의 가축도 번성하는데, 무모일이 많으면 반대로 목화농사나 네발짐승의 가축이 잘 안 된다는 것으로 여긴다.
그러나 충청북도지방에는 이러한 관습이 40∼50년 전까지는 많았지만 이제는 희박해지고 첫 쥐날에 콩을 볶아먹는 일 정도가 아직도 전승되고 있다. 최근에 실시된 각도의 민속조사에서 전라남도지방을 제외하고는 유모일·무모일을 따지는 풍속에 관한 보고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이러한 관습이 많이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