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서부전선의 요새지 대야성(大耶城 : 지금의 합천)에서 성주인 도독 품석(品釋) 휘하의 막료로 있었다.
642년(선덕여왕 11) 8월 백제 의자왕의 명장 윤충(允忠)이 대군을 이끌고 대야성을 공격하자, 검일(黔日)과 공모하여 백제군과 내통, 백제 병사를 인도하여 성중에 있는 군량미 창고를 불지르게 하였다.
절망한 품석은 그의 막료인 아찬(阿飡) 서천(西川)으로 하여금 윤충과 협상하게 하여, 목숨을 보전해준다는 약속을 믿고 처자와 함께 성문을 나와 항복하였다. 그러나 모척과 검일은 그들의 사령관을 모욕하고 협박하여 죽였다.
결국, 대야성은 사지(舍知) 용석(龍石)과 죽죽(竹竹)이 성문을 굳게 닫고 죽음으로 지켰으나 함락되고 말았다. 성민 1,000여인을 포로로 하여 백제에 귀부한 그는 백제군의 길잡이가 되어 신라를 자주 침공하였다. 660년(태종무열왕 7) 7월 13일 백제가 신라에게 항복하자 그는 검일과 함께 죽임을 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