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모준이(牟俊伊). 경상북도 청송 출신.
1905년 일제가 황제와 정부를 위협하여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여 우리의 주권을 침탈하자 1906년 이에 분개하여 정용기(鄭鏞基)가 인솔하는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가하여 항일전투에 참전하였다.
1907년 의병장 정용기가 순국하고 그뒤 후임 의병장 정환직(鄭煥直)마저 순국하여 의병부대가 흩어졌다. 그러나 새로이 의병부대를 편성하기 위하여 군자금 모금활동을 벌이는 한편 친일파 숙청활동을 전개하였다.
1908년 경상북도 영일군 관학산(冠鶴山)에서 일본군수비대에 잡혀 9월 14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뒤 대구공소원을 거쳐 10월 20일 대심원에서 형이 확정되었다. 1912년 징역 12년으로 감형되었고, 1916년 다시 9년으로 감형되었다.
1983년 건국포장,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