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진도(津渡)는 그 당시 사람과 말의 왕래나 물자의 운송로로서 그 구실이 매우 컸으며, 특히 목계진은 강 건너 가금면 가흥리에 있었던 가흥창(加興倉)으로부터 원주ㆍ제천ㆍ청풍 등지로 통하는 중요한 나루였다.
이곳은 중부내륙의 중심지인 충주에서 남한강 수로를 통하여 서울경강(京江) 의 광나루ㆍ송파ㆍ마포ㆍ동작나루 등과 연결되는 나루의 하나이자 남한강의 내륙 수로로서 사람과 물자의 교역이 이 나루를 통하여 많이 이루어졌다.
수운이 활발하다 보니 뱃길의 안전과 나루의 번영을 위하여 목계별신제(牧溪別神祭)라는 민속행사가 이곳 강변에서 연중 큰 행사로 이어져 내려왔다. 이곳에서 서울까지는 수로로 260리였으며, 조선시대 조창(漕倉)으로 최대 규모였던 가흥창과 그 성쇠를 같이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