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 약 1,900m, 지정면적 82,116㎡.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창녕읍의 동쪽에 있는 화왕산(火旺山)의 북쪽 봉우리로부터 서쪽으로 낮게 뻗은 야산의 계곡을 둘러싼 측면식(側面式, 山腹式) 또는 반면식(半面式) 산성의 대표적인 예이다.
확실한 축성연대는 알 수 없으나 신라진흥왕이 대가야를 완전히 정복하고 이 곳에 하주(下州)를 두었는데, 이전에도 이 성이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부근에는 가야시대의 고분들이 많이 분포되어 있는데 이 성의 연대를 추정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조선시대의 임진왜란과 관련있는 산성이라 하나, 이는 이 때 의병장 곽재우(郭再祐)가 왜적을 방어하기 위하여 산성터를 수축하였기 때문이다. 형태상으로 볼 때 삼국시대의 산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반면식으로 성의 정면이 계곡입구를 향하여 있으므로 수비를 위한 산성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산성의 명칭이 목마산성이기 때문에 혹시 후대에 말을 기르기 위한 목마장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석벽은 자연석 또는 네모꼴의 할석을 이용하였으며 아랫부분을 약간 내밀어 쌓아 견고히 하려 하였다.
한편, 산성으로서의 규모는 매우 커서 부근의 마안형(馬鞍形)의 화왕산성(火旺山城)과 비슷하여 같은 지방에 있는 산성 사이의 좋은 양식사적(樣式史的) 비교가 된다. 옛 가야지방에 남아 있는 성으로는 비교적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