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척 ()

목차
고대사
제도
신라시대의 관직.
목차
정의
신라시대의 관직.
내용

척(尺)의 고대음은 ‘치’로서, 이는 우리말로 직업을 나타내는 호칭인 ‘치’에 해당되며, 춤을 추던 악공(樂工)으로 생각된다.

『삼국사기』직관지(職官志)에 보이는 구척(鉤尺)·목척(木尺)·대척(大尺)·화척(火尺), 「남산신성비문(南山新城碑文)」에 보이는 장척(匠尺)·문척(文尺)·서척(書尺), 그리고 「영천청제비(永川菁堤碑)」에 보이는 부척(斧尺) 등이 바로 그러한 예이다.

무척은 그 뜻으로 보아 국립음악원 같은 데에 소속되어 있던 무용수를 지칭하는 것이 분명한데, 689년(신문왕 9) 국왕이 신촌(新村)에 거둥하여 잔치를 베풀고 음악을 연주할 때 가무(笳舞)에는 1명, 하신열무(下辛熱舞)에는 2명, 사내무(思內舞)에 2명, 한기무(韓岐舞)에 2명, 상신열무(上辛熱舞)에 2명, 소경무(小京舞)에 1명, 미지무(美知舞)에 2명씩이 각각 동원되었다고 한다.

또한, 807년(애장왕 8) 음악을 연주하였을 때, 처음으로 사내금(思內琴)을 연주하였는데 이 때 무척 4명이 청의(靑衣)에다 수놓은 부채와 금으로 아로새긴 띠를 둘렀다고 하며, 다음에 대금무(碓琴舞)를 연주하였을 때는 적의(赤衣)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집필자
이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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