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화려한 꽃무늬가 투각되거나 따로 붙인 높다란 보관을 쓰고 있는데, 좌우로 크고 번잡한 장식이 얼굴 좌우로 대칭되게 붙여놓았다. 높은 보관은 대구 파계사 건칠관음보살좌상 및 복장유물(보물, 1989년 지정)의 보관과 흡사한 것으로 동일 계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약간 방형(方形)의 모습을 보여주는 얼굴은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입과 귀도 작은 편이지만, 코가 길어 파계사 보살상보다는 시원한 모습이다. 이처럼 얼굴의 양감이나 표정은 고려 말·조선 초의 특징을 보여주지만, 보다 건장한 느낌을 준다. 상체는 파계사 보살상처럼 장대한 편에 속하고 앉아 있는 자세의 다리도 넓고 당당하게 나타내고 있다. 어깨는 둥글게 처리되었지만 건장한 편이며, 가슴의 양감은 뚜렷하지 않지만 당당한 편이다.
오른손은 들고 왼손은 내려 엄지와 중지를 맞댄 이른바 하품중생인(下品中生印)을 짓고 있는데 파계사 보살상과 역시 동일한 자세이다.
통견의 보살의는 약간의 두께를 나타냈고 옷주름은 간결하지만 옷깃 등에 표현된 띠나 넓은 옷자락 등에서 장중한 모습이 보인다. 긴 상체의 중앙에 승각기 상단의 띠주름과 아래쪽의 띠매듭은 조선 초기의 특징이며, 목과 배·다리에 큼직한 꽃무늬를 묘사한 화려하고 복잡한 영락 장식도 역시 이 시기를 대표하는 특징이다.
즉, 보관·얼굴·신체·영락 장식 등 모든 특징이 영덕 장륙사 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 1989년 지정)보다 진전된 파계사 보살상과 유사하며, 보다 양감있고 건장한 보살상이다.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금동보살상으로 높이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