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과 발문이 없어 편자와 필사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없다. 서체(書體)가 여러 사람의 것으로 되어 있어, 저자 생존시에 편집해 여러 사람을 거쳐 필사한 고본(稿本)인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내용 가운데 여러 군데 수정한 흔적이 발견되는 점으로 보아 교정을 거친 것임을 알 수 있다.
46권 22책. 필사본.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각 권별로 권수에 목록이 있다. 권1∼10에 부(賦) 2편, 시 1,270여수, 권11∼14에 소차(疏箚) 48편, 교문(敎文) 1편, 계(啓) 1편, 의(議) 4편, 강의(講義) 1편, 전장(箋狀) 11편, 권15∼26에 서(書) 380여 편, 권27∼30에 서(序) 41편, 권31∼33에 기(記) 71편, 제발(題跋) 22편, 권34에 행장 13편, 권35∼37에 묘지·비표(碑表) 59편, 권38에 시장(諡狀)·애사 10편, 권39·40에 제문 62편, 권41∼46에 잡저 68편, 부록으로 행장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시형이나 내용·소재면에서 상당히 다양함을 보이고 있다. 권1∼4의 시는 주로 서울 근교를 다니며 읊은 서경시(敍景詩)와 차운(次韻)·화답류(和答類)가 많은 것이 특색이다. 권5∼10에 수록된 시는 송경(松京)·해주(海州)·금강산(金剛山)·함흥(咸興)·안변(安邊)·덕원(德源)·장백산(長白山) 등지를 돌아다니며 읊은 서경·기행시로 되어 있다. 저자는 지방관으로 여러 임지를 돌아다녔고, 또 한때는 유배 생활을 했기 때문에 여행 경력이 매우 다양했는데, 그의 이러한 경험적 사실을 모두 시로써 형상화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시는 대개 각 권별로 저자가 옮겨 다닌 고장을 중심으로 엮어져 있다.
소차는 사직소(辭職疏)가 대부분이다. 서(書)에는 스승 이재(李縡)를 비롯해 박필주(朴弼周)·유척기(兪拓基) 등 당시 이름난 학자들과 학문적인 문답을 주고받은 것이 대부분이다. 주로 예학(禮學)에 관한 문답이 많다. 서(序)에는 송서(送序)·시서(詩序)·자서(字序) 외에 「화담집서(花潭集序)」 등 문집에 대한 서문도 상당수 있다. 기(記)에는 「이포기(梨浦記)」·「감로사기(甘露寺記)」 등 산수 기행문이 많은 양을 차지한다.
권41·42의 잡저는 이기(理氣)·심성(心性) 및 천문·역학에 관한 논설이 대부분이다. 이밖에 특히 주목되는 논문은 「양명학(陽明學)」·「불학원파(佛學源派)」 등의 글이다. 「양명학」은 당시 성리학계에서 이단시되던 왕양명(王陽明)의 학설을 논평 없이 소개한 것이다. 「불학원파」는 불교의 중국 전래사와 선(禪)·교(敎) 각 종파로 분립한 역사를 기술한 내용으로, 저자의 학문적 관심이 다양했음을 알 수 있다.
권43의 잡저에는 「논어의의문답(論語疑義問答)」 등 훈고(訓詁)에 관한 것이 많다. 이 밖에도 「학규(學規)」·「향음주의절(鄕飮酒儀節)」 등 학칙의 규범이나 의절에 관한 것이 있다. 권45의 잡저 「대책삼도(對策三道)」는 하도낙서(河圖洛書)·육경(六經)·붕당(朋黨) 등의 책문(策問)에 대해 쓴 과체(科體)의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