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고구려의 궐구현(闕口縣)이었는데, 고려 초유주(儒州)로 고쳤다. 1018년(현종 9) 풍주(豊州, 또는 豊川)에 속하였으나, 1259년(고종 46)문화현으로 바꾸고 감무를 설치하였다. 조선시대에 현령을 두었고, 1895년(고종 32)문화군(文化郡)으로 승격하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신천군에 편입되어 문화면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이 지역이 구월산(九月山) 남쪽 지역으로 서쪽은 광대산(廣大山), 남쪽은 운계산(雲溪山) 등의 산줄기가 막고 있었으며, 동쪽은 월당강(月唐江: 지금의 載寧江)의 지류인 운계천(雲溪川) 유역의 넓은 장평평야(莊坪平野)가 있었다.
문화현은 당시 황해도 북서부지방의 교통중심지로 신천(信川)ㆍ안악(安岳)ㆍ송화(松禾)ㆍ은율(殷栗) 등지와 연결되는 도로망이 발달하였다. 구월산에는 단군을 모신 삼성묘(三聖廟)가 있었고, 명종 때는 임꺽정의 소굴이 있었다. 유적으로 구월산성(九月山城)이 있었고, 연양역(延陽驛) 부근의 온정(溫井)은 당시에도 이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