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여지도』에 나타난 위치로는 고성과 사천(泗川) 사이이며, 문헌상에는 신라 때 고성군의 영현이 되었다는 기록만 있을 뿐 그 뒤의 변천은 알 수 없다. 문화량은 옛 발음으로 ‘문화라’라고 읽으며, ‘넓은 들’이라는 뜻이다.
지형적으로는 남쪽에 무이산(武夷山), 북쪽에 연화산(蓮華山: 지금의 蓮花峰)이 있고 동쪽은 적석산(積石山)에서 뻗은 산줄기가 솟아 있어 서북쪽으로 상동천(上東川)을 따라 사천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문화량은 삼면이 산지로 둘러싸인 계곡분지의 형태이므로 ‘넓은 들’의 뜻에 맞는 지역으로 본다.
이 지역은 해안지역에 가까우면서도 산지로 둘러싸여 있어 역사적으로 왜구의 침입을 별로 받지 않았다. 조선 말기까지 진주의 관할하에 있었으나 생활권은 사천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지금의 상리면 지역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