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흥(驪興). 자는 기지(起之). 여양부원군(驪陽府院君) 민유중(閔維重)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판중추부사 민진원(閔鎭遠)으로, 아버지는 함경도관찰사 민형수(閔亨洙)이며, 어머니는 이세항(李世恒)의 딸이다. 우의정 민백상(閔百祥)의 동생이다.
목사로 있다가, 1762년(영조 38) 문묘작헌례시(文廟酌獻禮試) 알성 문과에 을과로 급제한 뒤, 형 민백상의 명망으로 영조의 특은을 입어 바로 판결사에 임명되었는데, 그 해 같은 달 임금이 금상문(金商門)에 나가 방방(放榜)하고 민백홍을 승지에 임명하니, 사람들이 너무 지나친 예우라고 하였다.
두 달 뒤 충청도관찰사가 되었으며, 그로부터 또 석 달이 지난 뒤 대사간이 되었다가, 넉 달 뒤 다시 승지가 되었다. 1765년 이조참의, 1767년 동지의금부사, 이듬해 동지경연사(同知經筵事)·좌윤·예조참판·승지·공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768년 대사헌이 되었고, 1771년 이조참판에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