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세원(世元), 호는 춘산(春山). 전라남도 화순 출신.
1907년 일제에 의하여 고종이 강제퇴위되고 군대가 강제해산되자, 아들과 친척들에게 군자금 100냥을 주어 심남일(沈南一) 의병진으로 보냈다.
3·1운동을 전후하여 정재면(鄭載冕)·주창업(朱昌業) 등과 국민당 및 결사대를 조직하는 한편, 신덕영(申德永)·최양옥(崔養玉)·김정련(金正連) 등 대동단(大同團) 단원들과 연락하며 전라남도 화순군수와 능주·영광 등의 면장에게 사직을 권고하였다.
정인채(鄭麟采)·양사형(梁士亨)·양회진(梁會津)·윤자삼(尹滋三)·민영동(閔泳東) 등 부호들로부터 많은 군자금을 모금하여 숭일학교(崇一學校) 교사인 김정련과 상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보낼 계획을 의논하다가 붙잡혔다.
1921년 5월 11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징역 5년형을 언도받았으나, 그 해 8월 신병으로 보석되었다. 그러나 보석된 이튿날 유서를 남기고 자결하였다.
1968년 대통령표창,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