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여흥(驪興). 평장사(平章事) 민영모(閔令謨)의 4대손이며, 아버지는 대장군 민부(閔敷)이다. 장인은 최씨무인정권을 붕괴시킨 유경(柳璥)이다.
1280년(충렬왕 6) 좌랑(佐郎)으로서 시사(侍史)가 되고, 다음 해 경상도 안렴사(按廉使)가 되었다. 1290년 위위부윤(衛尉府尹)에서 전라도 지휘사(指揮使)가 되고, 다음해 승지의 자리가 비자 이덕손(李德孫)·권의(權宜) 등과 이 자리를 다투다가, 왕명으로 제비[籌]를 뽑은 결과 당첨되어 우승지가 되었다.
1300년 도첨의참리 지도첨의사사(都僉宜參理知都僉議司事)가 되고, 이듬해 원나라에 들어가 충선왕의 비(妃) 보탑실련공주(寶塔實憐公主)의 개가(改嫁)를 요청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그 표(表)를 올리지 않고 귀국하였다. 1303년 다시 참리(參理)에 임명되고, 다음 해 자의도첨의찬성사(咨議都僉議贊成事)가 된 뒤 치사(致仕)하였으나, 충선왕이 즉위하자 공주의 개가를 요청하는 표를 가지고 원나라에 들어간 죄로 유배되었다. 시호는 양민(良敏)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