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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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관수
박관수
정치
인물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학무국 시학관, 경기공립고등여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 친일반민족행위자.
이칭
이칭
금계(琴溪), 琴川寬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897년(고종 34) 12월 17일
사망 연도
1980년 9월 17일
본관
밀양(密陽)
출생지
경상남도 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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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학무국 시학관, 경기공립고등여학교 교장 등을 역임한 교육자. 친일반민족행위자.
생애 및 활동사항

1897년 경상남도 울산에서 출생했다.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호는 금계(琴溪)이다. 관립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나온 뒤 1919년 히로시마고등사범학교[廣島高等師範學校]를 졸업하고 1922년 도쿄[東京]제국대학 철학과를 수료했다. 1924년 대구고등보통학교 학감, 1926년 경상북도사범학교 교유 등을 거쳐 1938년 11월 조선총독부 학무국 시학관에 임명되었다.

1940년 경기공립고등여학교 교장을 맡았고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 참사, 총독부 외곽 정보 단체인 녹기연맹 회원으로 활동했다. 1941년 경기공립고등여학교 대표로 음악회 수익금을 국방헌금으로 헌납했고, 조선임전보국단의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1943년 국민총력 경성부연맹 이사로 활동하면서 학병 지원을 독려했다. 1944년 4월 춘천공립중학교 교장을 맡았다. 교장으로 재직하면서 전쟁협력을 위한 글을 여러 편 발표했고, 각종 신문과 잡지에 친일 관련 여러 편의 글을 남겼다.

해방 이후 1952년 경북대학교 교수, 1962년 한양대학교 교수 등 교육자로 활동했다. 교직에서 물러나 1965년 단군정신선양회회장, 신라오릉보존회(新羅五陵保存會) 총재, 1966년 한국아세아반공연맹 이사장, 1970년 공산권문제연구소 이사장, 1971년 현정회(顯正會) 이사, 1972년 대한노인회 회장 등을 맡았다. 『인간혁명론』·『북한의 농민』·『북한의 가정과 부녀자』·『현대한국반공투쟁사』 등 안보 관련 저서들이 다수 있다. 1980년 9월 17일 사망했다.

박관수의 이상과 같은 활동은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1·13·19호에 해당하는 친일반민족행위로 규정되어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 Ⅳ-6: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pp.7∼39)에 관련 행적이 상세하게 채록되었다.

참고문헌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Ⅳ-6: 친일반민족행위자 결정이유서(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현대문화사, 2009)
『친일인명사전』(민족문제연구소, 2009)
『조선총독부및소속관서직원록(朝鮮總督府及所屬官署職員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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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김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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