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종 때의 문신 박광우의 무덤으로 묘표를 비롯하여 사적비 및 상석, 동자석, 장명등, 문인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1987년 3월 31일에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상주 박씨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박광우(朴光佑, 1495∼1545)는 본관은 상주(尙州)이고, 자는 국이(國耳)이며, 호는 필재(畢齋) · 잠소당(潛昭堂)으로,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경기도 파주시 조리면(條里面) 오산리(梧山里)에서 태어났으며, 1525년(중종 20)에 문과에 급제하여 재령군수 · 강릉부사, 사간 · 지제교 등을 역임하였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불의를 참지 못하였다.
강릉부사로 있을 때는 선정을 베풀어 당시 부민(府民)이 세운 ‘부사박광우거사비(府使朴光佑去思碑)’가 강릉 향교 보호각에 현존한다. 박광우는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의 편찬에도 참가하였으며, 을사사화(乙巳士禍)에 연루되어 유배 도중에 장독(杖毒)으로 죽었다. 이이(李珥)의 상소로 복관되었고 충청북도 청주시 오창읍 양지리 사액서원인 송천서원(松泉書院)에 배향되었다. 청주시 가경동과 오송읍 쌍청리에 상주 박씨 집성촌이 있다.
본래 경기도 파주시에 있었던 것을 1967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으며, 이 때 나온 관곽과 유물들이 일괄 충청북도 민속문화재(현, 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봉분 바로 앞에 상석이 있고, 그 좌측에 묘비가 있다. 묘비의 글은 1687년(숙종 13) 송시열(宋時烈)이 지은 것이다. 상석 앞에는 문인석(文人石) · 동자석(童子石) · 망주석(望柱石)이 있는데 봉분을 처음 조성할 때 같이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이 외에도 근래에 조성한 장명등(長明燈)과 사적비(事蹟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