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8년(문무왕 8) 한성주도독(漢城州都督)으로 백제잔민토벌과 고구려정벌에 참여하였으나, 그뒤 모반을 일으켜 죽음을 당하였다.
668년 6월 고구려원정군의 선봉장으로 선발되어 대당총관(大幢摠管) 김인문(金仁問)·천존(天存) 휘하에서, 군관(軍官)·용장(龍長) 등과 같이 한성주행군총관(漢城州行軍摠管)이 되어 출정하여 9월에 평양성을 함락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그 뒤 백제잔민이 웅진(熊津 : 지금의 공주)에서 부흥운동을 일으킬 때, 백제의 부녀자를 박도유에게 시집보내고 그와 공모한 일이 있었다.
즉, 백제잔적들이 여인계를 써서 신라의 병기(兵器)를 몰래 취하여 관아를 습격하려는 음모를 꾀한 것이다. 그러나 이 사건은 사전에 발각되어 그는 참형되었고 백제잔민의 반란은 진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