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문빈 ()

관산유고
관산유고
유교
인물
조선 후기에, 『관산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이칭
회보(晦甫)
관산(觀山)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22년(현종 3)
사망 연도
1700년(숙종 26)
본관
반남(潘南)
출생지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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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에, 『관산유고』 등을 저술한 학자.
개설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회보(晦甫), 호는 관산(觀山). 생거지는 안악(安嶽)이다. 아버지는 훈련원부정 박증무(朴增茂)이며, 어머니는 정씨(鄭氏)이다. 이모(李慕)·박세채(朴世采)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고조 이래 벼슬이 끊이지 않은 사환(仕宦)의 집에 태어났으나 처음부터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오직 학문과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사문(師門)에서 물러나자 곧 바로 장연(長連: 황해도 은율) 남산 밑에 서당을 짓고 학규(學規)를 만들어 후진을 양성하였는데 당시 학생이 100여 명에 이르러 한 고장의 문풍이 크게 진작되었으며, 또 향약(鄕約)을 되살려 풍속순화에도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그 고장의 고통을 열거하여 상소로 개선해 주도록 요구하기도 하였다. 1699년(숙종 25)에 효행으로 남부참봉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학문 탐구와 후진 양성에 일생을 바쳤다. 저서에는 『관산유고(觀山遺稿)』가 있다.

참고문헌

『관산유고(觀山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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