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회보(晦甫), 호는 관산(觀山). 생거지는 안악(安嶽)이다. 아버지는 훈련원부정 박증무(朴增茂)이며, 어머니는 정씨(鄭氏)이다. 이모(李慕)·박세채(朴世采)의 문인이다.
고조 이래 벼슬이 끊이지 않은 사환(仕宦)의 집에 태어났으나 처음부터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오직 학문과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사문(師門)에서 물러나자 곧 바로 장연(長連: 황해도 은율) 남산 밑에 서당을 짓고 학규(學規)를 만들어 후진을 양성하였는데 당시 학생이 100여 명에 이르러 한 고장의 문풍이 크게 진작되었으며, 또 향약(鄕約)을 되살려 풍속순화에도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리고 그 고장의 고통을 열거하여 상소로 개선해 주도록 요구하기도 하였다. 1699년(숙종 25)에 효행으로 남부참봉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고 학문 탐구와 후진 양성에 일생을 바쳤다. 저서에는 『관산유고(觀山遺稿)』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