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은 성균관에 3인, 홍문관에 1인, 승문원에 2인, 교서관에 2인이다. 성균관에는 1392년(태조 1) 조선의 개국과 함께 박사 2인, 순유박사(諄諭博士) 2인, 진덕박사(進德博士) 2인을 두었다가 뒤에 박사 3인, 겸박사(兼博士) 1인으로 통합되었으나 겸박사는 곧 폐지되었다.
연산군 때 성균관을 혁파하면서 박사직도 다른 관서로 나누어 보냈다가 1506년(중종 1) 중종반정으로 원상회복되었다. 1895년(고종 32) 폐지되었다가 1897년 교수(敎授)로 개칭되었다.
홍문관 박사는 1463년(세조 9) 홍문관 설치 때 처음 1인을 겸직으로 두었고, 1470년(성종 1) 예문관에 정직 1인을 두었는데, 1478년 홍문관이 예문관에서 분리, 독립되면서 그대로 정제화되었다. 홍문관 박사는 경연청(經筵廳)의 사경(司經), 춘추관기사관(春秋館記事官)을 겸직하여 왕의 측근에서 문한(文翰)과 사관의 직무를 담당하였다.
승문원 박사는 1415년(태종 15) 저작(著作) 2인과 함께 증치되었고 연산군 때 잠시 폐지되었다가 곧 부활되었다. 교서관 박사는 1401년(태종 1) 처음 설치되었는데, 연산군 때 타관원의 겸직으로 되었으나 1506년 중종반정으로 다시 정직화하였다.
성균관 이외의 박사직은 모두 1894년(고종 31) 갑오경장 이후에 폐지되었다. 이들 박사직은 각 관서의 실무적인 일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