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순천(順天). 호는 이헌(頤軒). 할아버지는 평양부원군(平陽府院君) 박천상(朴天祥)이고, 아버지는 밀직부사 박가흥(朴可興)이다.
1385년(우왕 11) 승보시에 동진사(同進士)로 급제하여 1390년(공양왕 2) 우부대언(右副代言)·병조판서를 지냈다. 1392년(태조 즉위년) 조선이 건국되자, 귀의군(歸義君) 왕우(王瑀: 공양왕의 아우)의 사위였던 관계로 7년간 은거하였다.
1399년(정종 1) 고려의 구신들이 등용되자 좌산기상시(左散騎常侍)로 기용되고 안주목사를 거쳐 이듬해 도승지가 되었다. 정종이 태종에게 선위하자 그 교서를 가져가서 태종을 옹립하였다.
1401년(태종 1) 좌명공신 3등이 되고 평양군(平陽君)에 봉해진 뒤, 지신사(知申事)를 거쳐 1405년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 이듬해 함경도선위사·전라도도체찰사 등을 역임하였다.
젊었을 때 정종과 같이 이불을 덮고 자는데 꿈에 누런 용이 옆에 있으므로 돌아다보니 태종이었다. 그때부터 기이하게 여겨 서로 친구로 더욱 두텁게 지냈다. 태종이 임금이 되면서 태종의 총애를 받았다.
지의정부사·판육조사(判六曹事)에 올랐다. 평소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이 깊었는데, 특히 태종에게 황희(黃喜)를 승지로 천거한 것이 유명하다. 시호는 문숙(文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