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여승(與乘). 아버지는 금양위(禁陽尉) 박미(朴瀰)이며, 어머니는 선조의 다섯째 딸 정안옹주(貞安翁主)이다. 정홍명(鄭弘溟)의 문인이다.
1639년(인조 17) 진사가 되었으나 부상(父喪)으로 수년 뒤에 세마(洗馬)를 제수받고, 그 뒤 장악원첨정(掌樂院僉正)에 이르렀다. 옥천군수(沃川郡守)로 재임시에는 선정을 베풀었는데, 특히 송사(訟事)를 잘 다스려 관찰사 이경억(李慶億)에게 정치적 재완을 인정받는 등 판결이 어려운 것은 모두 박세교에게로 돌아왔다.
흉년이 든 때에는 정성껏 진휼하여 어려운 처지의 백성들을 많이 구제하였다. 1659년 효종이 죽자 곧 사직하고 귀향하였다. 뒤에 모상(母喪)을 마친 뒤 공조정랑·군기시첨정·강화부경력(江華府經歷)을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