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박성환(朴星煥). 서울 출신.
어려서부터 지혜와 용기가 뛰어나 군대에 복무한 지 10여 년만에 육군 참령이 되었다. 1895년 10월 일제의 명성황후시해사건의 만행이 자행되자, 통분하여 일본인에 보복하고자 하였으나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1907년 7월 일제가 헤이그특사사건을 구실로 고종을 강제 양위시킬 때, 궁중에서 거사하여 이를 저지하고자 하였으나, 화가 황제에게 미칠 것을 염려하여 중단하였다. 시위대 제1연대 제1대대장으로 있을 때인 1907년 8월 1일,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의 해산 통고를 하려고 새벽에 대대장 이상의 장교를 일제 통감의 관저인 대관정(大觀亭)에 집합시켰으나, 병을 핑계로 불참하였다.
오전 10시 일제가 군대 해산식을 강행하자 크게 분개하여, “군인은 국가를 위해 경비함이 직책이어늘 이제 외국이 침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홀연히 군대를 해산하니, 이는 황제의 뜻이 아니요 적신이 황명을 위조함이니 내 죽을지언정 명을 받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대대장실에서 “군인이 능히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가 능히 충성을 다하지 못하면 만번 죽어도 아깝지 않다.”라는 유서를 쓰고 “대한제국 만세!”를 외친 다음 권총으로 자결하였다.
이를 보고 있던 장병들이 박승환의 자결을 모든 부대에 전하니 부대 장병들이 분격하여 탄약고를 부수고 탄환을 꺼내어 무장 봉기하였다. 제1연대 제1대대의 봉기 소식을 듣고 제2연대 제1대대도 이에 호응하여 봉기하였다.
장병들은 일본군과 총격전을 벌이며 전투에 들어갔으며, 전투가 끝난 뒤에는 상당수의 군인이 의병으로 전환하였다. 박승환의 자결은 대한제국 군대 최후의 진면목을 보여준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군대의 봉기에 의한 의병 운동의 무력 강화를 가져와 의병 운동이 의병 전투로 전환하는 기틀이 되었다.
1962년에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