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정길(正吉), 호는 읍백당(挹白堂). 박계현(朴啓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박안세(朴安世)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박승종(朴承宗)이며, 어머니는 김사원(金士元)의 딸이다.
1609년(광해군 1) 사마시에 합격하고, 1613년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 세자시강원사서(世子侍講院司書) 및 홍문관부수찬(弘文館副修撰)을 거친 뒤 1617년에는 홍문관부교리(弘文館副校理)·성균관직강(成均館直講)·세자시강원문학을 역임하고 1618년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이 되었다.
이때 인목대비(仁穆大妃)의 폐출론이 대두되자 신병을 핑계로 불참한 이유로 이듬해 고산현감(高山縣監)으로 좌천되었다. 1620년 영광군수를 거쳐, 그 뒤 홍문관수찬·정자(正字)·교리·응교(應敎) 및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장령(掌令)을 역임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 뒤에는 제주로 유배되고, 이재영(李再榮) 등의 공사(供辭: 심문조서)에 의하여 박자응의 급제가 차술(借述: 남의 글을 빌려서 서술함)임이 밝혀지자 삭과(削科: 과거 합격자 등록에서 삭제)되었다. 1628년(인조 6) 진도로 이배된 뒤 이듬해 위리(圍籬: 죄인의 유배장소를 가시 울타리로 둘러치던 것)만 철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