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부터 남북병영(南北兵營)에 출입하면서 20여 년간 군무에 종사하였다. 그 사이에 이경준(李耕俊)·박응서(朴應犀)를 몇 차례 만난 것이 화가 되어 1613년(광해군 5) 계축옥사(癸丑獄事)에 연루, 억울한 죽음을 당하였다.
이 시기에 박응서 등은 조령(鳥嶺)에서 강도행위를 하다가 체포되었는데, 당시 대북파에서 인목대비(仁穆大妃)의 아버지인 김제남(金悌男)을 모함하던 차에 이들 일당과 연결지어 역모를 꾸몄다고 허위진술하게 하였다. 이로 인해 죽음을 당하고 박종인이 거주했던 홍천(洪川)의 수령이 파직되었으며 읍호도 강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