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1959. 농부의 아들로서 양주구읍에서 출생하였다. 무학으로 농업에 종사하면서 14세(1909)경부터 김성태(金星泰)의 동배로서, 석성묵(石性默) · 이윤서(李允西) 등으로부터 산대탈춤을 배웠는데, 그는 옴중춤과 원숭이역을 잘하였다.
그의 아들 교응(敎應, 1922∼1982)은 「양주별산대놀이」의 예능보유자(첫상좌 · 완보 · 말뚝이역)였다. 그는 1957년 11월 한국연극학회 주최로 이화여자고등학교 노천극장에서 광복 후 처음으로 「양주별산대놀이」를 공연하였을 때 김성태 · 박동환(朴東煥) 등과 더불어 명연희자로서의 솜씨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