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곳 밀양 박씨 영동정공파(令同正公派)의 종손 박성길(朴性吉)씨 집에는 장군이 평소 사용하던 유품과 명나라 제독으로부터 받은 장려패문(奬勵牌文) 등 모두 231점이 소장되어 있다.
장군은 증 형조판서 오(旿)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호는 광서(匡西)이며, 시호는 무숙(武肅)이다. 그는 정구(鄭逑)의 문하인으로 문학이 있고, 활쏘기 · 말타기에 능하여, 선조 때 무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군수 유숭인(柳崇仁)과 함께 의병을 모아 왜적을 무찔렀다. 그 공으로 선무원종공신 3등의 녹훈이 내려졌다.
1599년(선조 32)에 용관현감에, 1613년(광해군 5)에 경흥도호부사에 임명되었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도원수 장만(張晩)의 휘하에서 별장으로 종군하여, 신경원(辛景瑗)과 힘을 합하여 동교에서 격파하였다. 이어 평산도호부사가 되어 해서방어사(海西防禦使)를 겸임하다가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의 후손이 지은 장군의 실기인 『광서실기(匡西實記)』가 전한다.
231점의 유품 중에는 교지 · 분재기 · 토지문서 · 노비문서 · 호구단자 · 소송문서 · 입안 · 간찰 등 각종 고문서가 들어 있어, 조선 후기 사회경제사연구에 큰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