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팽년 선생 유허에는 조선 전기의 사육신의 한 사람인 박팽년이 거주한 곳으로 충청남도 회덕현 흥농촌 왕댓벌에 위치한다. 이곳에는 현종대에 건립된 유허비가 비각에 남아있다. 1989년 3월 18일에 대전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박팽년(朴彭年, 1417~1456)의 본관은 순천(順川)이고, 자는 인수(仁叟)이며, 호는 취금헌(醉琴軒)이다. 세종대의 집현전 학사였으며 단종 복위 운동에 참여하다 죽은 사육신 가운데에 한 사람이다.
유허비는 1668년(현종 9) 송시열(宋時烈)이 짓고, 송준길(宋浚吉)이 글씨를 쓰고, 민유중(閔維中)이 전액을 썼다. 비의 규모는 높이 141㎝, 폭 59.5㎝, 두께 32㎝이며, 1989년 3월 18일에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1672년(현종 13)에 비각(碑閣)을 지어 장절정(壯節亭)이라 하였으며 그 후 6·25 때 비각이 파괴되었으나 현대에 와서 중건한 것이다.
유허비가 있는 곳에서 북으로 몇 보를 가면 박팽년이 지었다는 연못 정자 자리에 주춧돌이 몇 개 남아 있어서 500여 년 전의 자취를 살필 수 있다. 그가 이곳에 거주한 기간과 선조들이 이주한 시기, 그리고 그 계기가 무엇이었는지는 기록의 미비로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유허비를 통해 선생이 연못가에 정자를 짓고 살았던 구체적인 장소가 지금의 대전광역시 동구 우암로 더퍼리 지역이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박팽년이 당시 회덕의 명문가였던 은진 송씨 송유(宋愉)의 별당인 쌍청당(雙淸堂)의 당기(堂記)를 썼다는 사실과 그 내용이 송유의 향촌 생활을 소상히 적고 있다는 사실 등을 근거로, 그가 이곳에 상당 기간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