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의 기록에는 “백제 근초고왕 때 고구려의 고국원왕 사유(斯由)가 반걸양(半乞壤)에 이르러 싸우려 하거늘, 왕이 태자를 보내어 이를 막게 하였다. 태자가 적을 크게 쳐부수어 수곡성(水谷城: 지금의 新溪)까지 쫓아버렸다.”라고 되어 있다.
『대동지지(大東地志)』에도 반걸양을 백제의 미상지분(未詳地分)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이를 배천지방으로 보는 것은 ‘반걸’이 ‘밝음’을 뜻하고 ‘양(壤)’의 고음(古音)을 ‘내’로 읽는다면 ‘밝은 내’가 되니, 배천도 여기서 유래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당시 고구려와 백제의 영토가 대개 멸악산맥을 경계로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반걸양은 예성강(禮成江) 유역의 연안평야(延安平野) 지역이었을 것이다.